이틀 뒤에 입사를 앞두고 있다.
직무는 풀스택 개발자.
겨우 2학년을 마친 내가 어쩌다가 갑자기 개발자로 취업을 하게 됐을까?
때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던 작년 12월 초, 이번 겨울방학에는 인턴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발을 항상 혼자 공부했기 때문에 열심히는 했지만 맞는 방향인지 몰랐고,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AI로 인해 신입 개발자 채용 시장이 안 좋아져서 최대한 빠르게 '신입 딱지'를 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12월 4일, 이메일 발송
그래서 일단 이력서를 만들어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두 곳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심지어 한 회사에는 채용 담당자 이메일을 못 찾아서 고객센터 주소로 이력서를 보냈다. 사실은 답장이 올 거란 기대 자체를 안 했다. 애초에 확인을 할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확률을 높이기 위해 메일 제목도 자극적으로 써서 보냈고, 연락이 오는 회사가 나올 때까지 수십 통, 수백 통은 메일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회사에서 모두 답장이 왔다. 한 회사에서는 아쉽게도 인턴 TO가 없으니 인재풀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인턴 TO가 생기면 연락을 준다고 했고, 다른 회사에서는 일단 CTO님과 커피챗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12월 9일, 커피챗
생각보다 빠르게 커피챗 일정이 잡혔고, 판교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너무 떨렸다. 일단 사무실이 너무 좋아서 놀랐고, CTO님 키가 엄청 크셔서 또 놀랐다.
처음엔 엄청 떨렸는데,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CTO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즐겁게 대화했다. 커피챗에서는 왜 이 회사에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나,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또 미리 준비해 간 질문 리스트를 비롯해 내가 회사에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커피챗 며칠 뒤, 채용 절차를 진행해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12월 22일, 과제 전형
정확히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교가 종강을 하자마자 2주 간의 과제 전형이 시작됐다. 기말고사와 과제 전형이 겹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일정 편의를 봐주어서 종강과 동시에 과제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과제 기간 14일 동안은 피치 못할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과제만 했다.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었다. (special thanks to my mommy) 나는 평소에 혼자 개발을 할 때 기술적 완성도를 신경 쓰기보다는 일단 어떻게든 눈앞에 주어진 기능을 개발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렇다 보니 기능 구현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확장 가능하고 견고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쓰다 보니 꽤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열심히 한 덕분에 나름 만족할만한 결과를 냈고, 과제를 하면서도 엄청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며칠 뒤 과제 전형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1월 15일, 실무 면접
실무 면접은 회사 사무실에서 오후 6시부터 두 시간 조금 넘게 봤다. 나는 풀스택이라 프론트엔드 개발자 두 분, 백엔드 개발자 두 분이 들어오셨다. 초반에는 이력서 기반으로 질문을 받았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진행했던 과제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잘 대답한 것도 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질문도 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질문에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니까 ~하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최대한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면접이 끝나니까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는데, 그때까지 나를 위해 퇴근하지 않아 주신 면접관분들과 HR 매니저님께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실무 면접 통과 소식을 들었다.
사실 실무 면접은 그렇게까지 잘 봤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과제 전형을 제출할 때 문서화를 상세히 해둔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또, 신입의 패기를 보인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면접 때, "만약 방학이 얼마 안 남아 1달밖에 일을 못 한다면, 남들보다 2배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었다.)
1월 22일, 문화 면접
CEO님, CTO님과 마지막 절차인 문화 면접을 봤다. 원래 다른 기업의 최종 문화 면접은 그냥 팔다리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절차인 경우가 많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이 회사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문화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후기가 꽤 보여서 조금 긴장됐다.
확실히 사지 이상 여부 확인 면접은 아니었고, 문화 면접도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실무 면접과 달리 문화 면접에서는 기술적인 질문보다는 일에 대한 가치관이나 커리어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이는 내가 평소에 자주 깊게 생각해 보던 주제였기 때문에 답변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두 번의 면접 모두 뭐랄까 면접이라기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하고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두 분이 모두 나에게 "개발자보다 PO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사실 나도 스스로 PM/PO 직무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남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내가 나를 봐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발자의 이미지에 비해 커뮤니케이션이나 적극성, 실행력에 강점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한다. 아직은 개발이 너무 재밌고 좋지만, 추후에 커리어를 전환하게 된다면 개발자 외의 PM/PO 직무를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담으로, 문화 면접에서 수정하고 싶은 답변이 하나 있다. 만약 100억이 있으면 뭘 하고 싶냐고 물으셨는데, "어차피 돈은 있을 대로 있으니 사업성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다"라고 답했다. 사실 평소 내 생각은 "이제 100억은 모았으니 어떻게 1000억으로 점프할지 고민해 볼 것 같다"에 가까웠는데, 의식적으로 생각과 다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답변이 나갔다. 뭔가 조금 건방져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원래 생각대로 답변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무튼 면접 다음날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최종 합격 이후 입사 준비
사실 원래는 겨울 방학 동안만 인턴을 하려고 했는데 채용 절차가 끝나고 보니 어느새 1월 말이었다. 회사와 나 사이에서 "어차피 한 달만 일하는 것은 회사와 나 모두에게 얻을 것이 없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1년 계약직으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로서는 안 그래도 휴학을 많이 했던 참에 졸업이 더 늦어진다는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일해보고 싶은 기업이었고 또 채용 절차를 진행하면서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고민 없이 수락했다.
최종 합격부터 입사일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고, 회사에서 입사 준비를 위한 강의를 제공해 주었다. 이 기간 동안 과제 전형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과제 전형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동기는 '합격에 대한 간절함'이었고, 이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적응에 대한 불안함'이었던 것 같다.
합격을 한 뒤에는 아주 기뻤지만, 막상 이제 실무에 투입될 생각을 하니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고 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더 많이 보이고 더 걱정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걱정은 입사일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심해져서, "내가 팀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면 어떡하지?", "회사가 나를 뽑은 게 실수였다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책임감 있는 성격이 나를 이런 상황에서 나태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과해지면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에서도 한 번 느꼈던 것인데, 한 번 주눅들기 시작하면 점점 더 소심해지기 시작하고 이게 악순환이 되어 점점 더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게 되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나를 너무 갉아먹지 말고 멘탈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따뜻해졌겠다, 오늘 저녁에는 러닝이라도 나가야겠다. 멘탈 관리에는 러닝이 최고다.
올 한 해에는 정말 그 무엇보다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말 많이 일하고 그만큼 많이 성장하고 싶다. 내가 열심히 함으로써 나도 성장하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내년 이 시기에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지금 했던 걱정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무섭고 떨리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난 이번에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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